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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게시판

황혼열차(黃 昏 列 車) 수필

등록일
2017.04.06
작성자
32회 김시종 [IP : 121.151.8.157]
조회수
804
분류
일반게시글

                                  황혼열차(黃昏列車)

 

                                                                                                         송학   김  시  종

 

 

   뜬 눈으로 밤을 새웠다. 아무리 잠을 청해도 몽유병 환자처럼 갖은 상념이 뇌리를 사로잡는다. 먼동이 트면 테마열차로 동호인과 겨울철 여행길을 떠난다. 생각만 해도 마음이 천진난만한 아이들처럼 들뜨는 기분이다. 남자는 마음이 늙으면 늙는다고 했듯이 인생의 삶이 저물어 가는 석양의 길목에서 문학 동호인과 아름다운 황혼열차에 몸을 싣고 매연이 풍기는 도시를 떠난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즐겁고 저절로 행복해지는 듯하다. 그 행복한 마음은 옥타브 되어 설렘으로 다가 온다.

   테마열차는 동대구역을 기점으로 한다. 아침 08:34분에 출발하는 순환열차의 무궁화호 객차마다 유니크하게 꾸며져 있고, 경북의 17개 간이역을 순환하는 열차다. 임진년 정월에 경북지방을 순환하는 열차는 객실마다 이색적인 형상이 우리의 삶을 대변하듯 보기만 하여도 눈이 즐거워진다. 차량 외부 장식이나 실내가 일반 열차와는 판이하다. 우선 보기만 하여도 테마열차는 인생의 꿈과 낭만과 풍류를 싣고 추억을 만드는 열차이기도 했다. 대구를 출발한 기관차는 구미를 지나 김천이 가까워오자 차창 밖에 번쩍이는 황악산 봉우리마다 핀 눈꽃이 한 폭의 동양화 같기도 했다. 은빛으로 몸을 단장한 황악산의 자태가 장관이다. 열차는 강기슭을 따라 교량을 건너고, 산 모퉁이를 돌아가면 새로운 자연 풍광이 펼쳐지기도 했다. 지역마다 특용 작물 재배 탓으로 엄동설한에도 신선한 채소가 밥상에 올라오듯이, 옛부터 산수가 수려하면 그 지방에 선비가 많이 배출되었다고 한다. 열차는 쉬지 않고 가쁜 숨을 몰아쉬며 북녘 땅을 향해 달린다. 경북 북쪽에는 월악산, 소백산 국립공원과 동북방에는 태백산맥에서 뻗어난 청량산 도립공원이 병풍처럼 감싸고 있다.

   순환 테마열차는 대자연의 아름다운 풍광과 문화자원을 활용한 친환경 관광으로 우리의 미래를 밝게 비춘다. 사람은 누구나 자연의 섭리에 순응하며 자연과 더불어 풍요롭게 살 수 있다면 사람다운 정(情)의 문화가 인간의 심성을 정화시키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나는 영주 역에서 하차했다. 선비촌과 소수서원을 둘러 고찰인 희방사를 돌아보고 싶었다. 역사(驛舍)를 벗어나 연계 관광 버스에 올랐다. 선비촌을 돌아보고 소수서원 길목에서 은빛 찬란한 소백산 등성이의 은하의 경관이 길손의 마음을  밝게 해 주는 듯했다. 태산준령(泰山峻嶺)은 말이 없고 바위틈 사이로 떨어지는 물방울 소리가 목탁(木鐸)음처럼 적막을 깨트린다.

   소수서원은 우리나라 최초의 서원이다. 선비들이 많이 배출된 서원으로 유명세를 달리하고 있다. 죽령의  고갯길은 과거보러 가는 한양의 길목이기도 했다. 소수서원은 굴절된 역사를 이야기라도 하듯 수백 년 묵은 소나무며 은행나무가 울창한 숲을 이루고 있다. 경내는 우리 문화의 전통을 살린 흔적이 서원 곳곳에 묻어 소수서원을 지키는  듯했다. 

   나는 희방사를 가기 위해 죽령의 험악한 오르막 길을 혼자 외롭게 오르고 있다. 소백산은 지리적으로 삼국시대부터 군사적 요충지다. 한반도의 등뼈와 같은 백두대간의 줄기를 차지하는 명산 (名山)이다. 소백산에 흩어져 있는 사찰은 의상대사와 그의 제자들에 의해 삼국통일 직후에 창건 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희방사는 고운사의 말사로 삼국통일 전 선덕여왕 12년 (643년)에 두운(杜雲)조사가 소백산 남쪽 기슭에 창건한 사찰이다.  경내에는 희방사 동종과 월인석보 책판을 보존하고 있다. 동종은 조선 영조 18년 (1742년)에 주조된 것으로 머리 부분이 둥굴고 아래로 내려가면서 곡선 모양으로 만들어진 종이다. 종을 거는 고리는 두 마리의 용으로 되어 있고, 몸통에는 두 줄의 띠가 있다. 처음에는 충북 단양 대흥사 종으로 주조되었으나, 사찰이 페사되자 희방사로 이전하였다. 종의 몸통에는 네 사람의 보살 입상이 배치되어 있는 안정감 있는 범종이다.  월인석보는  세종의 명으로 석가세존의 일대기를 국문으로 엮은 석보상절과 세종이 그 석보상절을 보고 석가세존의 공덕을 기리며 노래로 지은 월인천강지곡을 합친 책으로 전해 오고 있다. 

   희방사의 창건 설화는 어느 날 두운조사가 산길을 가다가 신음하는 호랑이를 발견하였는데  어떤 여인을 잡아먹고 그녀의 비녀가 목에 걸렸던 것을 두운조사가 비녀를 빼주어 호랑이를 살려 주었다. 호랑이는 그 은혜를 갚기 위해 신라 호장(戶長)의 무남독녀를 물어다 두운조사에게 주었더니  스님이 이 딸을 호장에게 돌려 보냈다. 호장은 감복하여 그 은혜를 갚기 위해 희방사를 지어 주었다는 설화가 있다.

   희방사가 위치한 소백산은   한자로 小白으로 표시하는데 白자는 주먹을  "불끈" 쥐고 엄지손가락을 세운 모양이니 으뜸으로 상징한다. 옛사람은 태백산과 소백산을 “二伯”으로 함께 인식 하였다. 해발 1439,5m의 소백산에는 호국 목적으로 세워진 신라 고찰이 많이 있다. 최고봉인 비로봉 아래는 비로사와 용천사가 있고, 국망봉(1420m) 아래는 초암사와 성혈사가 있으며, 연화봉(1383m)밑에는 희방사와 국내  내륙지방의 최대 폭포인 높이 28m가 되는  희방폭포가 있다. 그   동쪽으로는 부석사가 있다. 산 이름이 소백산(小 적을 소 ) 이지만 산자락은 결코 작거나 낮은 산이 아님을 알게 되었다.

   나는 희방사 대웅실전 앞 뜰에서 소백산의 장엄한 저녁 노을을 바라보면서 마음만은 벌써  영주역에 도착할  테마 순환 열차를 기다리는 듯했다.(尾)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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