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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게시판

연못가의 추억( 수필)

등록일
2017.03.21
작성자
32호김시종 [IP : 121.151.8.157]
조회수
809
분류
일반게시글

                                                        연못가의 추억

                                                                              수필가,   김시종(대구경우회원)

 

 

  안개가 자욱하다. 이른 새벽녘이다. 동구 밖 연못에는 하얀 물안개가 피어오른다. 안개가 찢던 것으로 보아 날씨가 화창하고 따뜻할 것 같다. 언제부터인가 새벽녘이 되면 연못을 산책하는 것이 첫 일과의 시작처럼 습관화되었다. 고희가 가까워지면서 새벽잠이 없어진 듯 식솔들이 잠결에서 깨어나기 전에 방문을 나간다. 산책을 위한 연못을 찾아 나선다.

  안갯속에 피어오른 연꽃이 계절의 여왕처럼 사람들의 시선을 끌어모은다. 물안개 사이에 핀 연꽃의 아름다움에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핑크빛 미소를 머금고 있는 연꽃을 보기 위해 산책 나온 사람들이 모여든다.

  맑은 물속에 피어오른 연꽃을 유심히 보는 것이 일상생활의 단면처럼 되었다. 어찌 보면 연꽃 위에 선녀가 사뿐히 앉은 것처럼 환영을 느낄 때가 있다.

  연못을 몇 차례 돌고 돌아 산책이 끝날 무릎이면 으레 못 둑에 커피를 파는 노점 행상이 나타난다. 이때쯤 이면 산책을 즐기든 사람도 한두 사람씩 행상 앞에 모여든다. 이른 새벽 따끈한 차 한 잔을 하다 보면 가벼운 눈인사를 나누는 말동무가 생겼다. 그 사람도 산책이 끝나면 으레 차 한 잔을 하기 위해 노점상 쪽으로 닦아온다. 중년의 여인이다. 검은 머리에 부분 갈색으로 물들인 살결이 고운 여인이다. 그녀의 모습은 언제 보아도 단정한 차림새다.

  나와 그녀 사이에 눈인사를 나누면서 서로 눈동자가 마주칠 때 그 여인의 얼굴에는 그 무엇에 대한 갈증과 야망이 두드러져 보이기도 했다. 호수같이 잔잔한 얼굴에 사색하는 눈빛에 지성미가 묻어난다. 나는 그 여인과 마주 서서 인사를 나눌 때 그녀의 체취에서 연륜이 배여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불혹지년에도 불구하고 나이에 비추어 세련되고 이국적인 향수가 풍기는 그녀에게도 인생의 나이테가 가슴에 젖어들어 보인다.

  인간의 삶도 강물 흐려 듯 자식도 성장하여 엄마의 품을 벗어 날 때 여인의 가슴에도 공허하고 허전함을 느낄 순간이 있다고 했다. 그녀가 불혹의 연륜이 됨에 인생살이에 대한 희로애락을 절감한다고 한다. 한편 세월이 가기 전에 미지의 세계에 도전하고 싶은 욕망이 여인의 눈빛이 반짝이는 보석처럼 전광석화 같았다.

  그녀와 연결 고리는 산책이었다. 산책이 끝나면 못 둑에서 눈인사를 나누며 차 한 잔 마시는 것이 유일한 즐거움이다. 어찌하다가 그녀가 보이지 않을 때는 궁금증이 상상의 나래를 편다. 무슨 일로 산책 길목에 나오지 않았는지 조바심도 생긴다.

  그녀는 언제 보아도 청바지에 보라색 운동화 차림이다. 중년에 비추어 어울리지 않을 차림새이지만 몸에서 풍기는 싱그러움이 묻어나 보인다. 마치 사춘기에 들어선 여고생처럼 활력과 탄력이 넘치기도 했다.

  그러한 그녀가 한마디 말도 없이 어느 날 갑자기 사라졌다. 오르지 연못에 피어오른 물안개처럼 피었다가 바람처럼 사라진 그녀를 볼 수 없게 되었다. 무엇 때문에 연못에서 종적을 감추었는지 궁금해졌다. 보고 싶고 그리운 얼굴이다.

  달이 지나고 해가 바뀌어도 자상스럽고 인자한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다. 그녀에 대한 그리움만이 가슴에 가득했다. 우연한 기회에 국전 전시장을 찾을 기회가 있었다. 국전에 출품된 작품을 관람하다가 연꽃 그림 앞에서 걸음을 멈추었다. 연꽃에는 화가의 섬세함이 잘 나타나 있었다. 나는 한동안 그 작품 앞에서 떠날 줄 몰랐다. 연꽃 그림을 유심히 보는 동안 무언지 모르게 자신이 연꽃 속으로 빠져 들어가는 느낌을 받았다.

  연못의 모양새나 연꽃이 핀 지점이 눈에 몹시 익은 듯했다. 연꽃 사이로 피어오르는 물안개가 내 시야에 각인되는 순간 혹시나 못 둑에서 인사를 나누며 차를 마시던 그녀가 주마등처럼 생각났다.

  작가의 프로필을 보고 혹시 연못가에서 만나든 여인이 아닌가 싶어 마음이 동요했다. 출품된 작품에 대하여 주최 측에 문의해 보았더니 “그분은 동양화가로 명암明暗이 있는 이모 화백이라고 하며, 저 그림은 자궁암으로 병원에 입원해 있을 때 그린 그림으로 이번 국전에 특선 된 작품으로 고인의 유작이라고” 설명했다

  나는 이제야 그녀가 연못에서 사라진 이유를 알게 되었다. 새삼스럽게 인생의 무상함을 절감하였다. 나에게는 삶에 대한 말동무요 연못을 산책하는 동행자를 잃어버린 심정에 가슴이 몹시 절여왔다. 아까운 사람이다.

  그녀와 내가 못 둑에서 나눈 지난 이야기를 돌이켜 생각하면 짧은 세월이었지만 아름다운 추억이 온몸에 엄습해 오는 듯했다.

  화폭 위로 물안개가 피어오른다. 연꽃 사이로 그녀의 환영이 오버랩 되면서 몇 겁의 인연으로 여백의 문장이 피어오른다.

 

 

문단 약력

雅號: 松鶴

계간 <영남문학>등단, 수필과 지성 동인, 文登伊 구락부, 영남문학 작가회원, 대구수필가협회원,

대구문인협회원, 이후문학 회원, 한국경찰문학 대구,경북지회장.

저서: 봄의 지열, <개척> 편집 주간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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